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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택시기사 압델, 한국에 반하다

by insight19702 2025. 10. 13.

파리의 아침, 샹젤리제

압델 라흐만, 예순다섯. 모로코에서 건너와 파리에서 35년째 택시 핸들을 잡고 있는 남자입니다. 오늘 아침, 그의 택시 내비게이션에 뜬 목적지는 샹젤리제 중심가. '오징어 게임 시즌2 이벤트장'이라는 문구가 선명합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명품 매장 전광판들. 루이비통 광고엔 한국 배우가, 샤넬 쇼윈도엔 한국 아이돌이 서 있습니다. "요즘 파리는 참 달라졌어." 압델은 혼잣말을 중얼거립니다. 1980년대, 그가 처음 이 거리를 달릴 때만 해도 일본 문화가 파리를 휩쓸었습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전자제품. 그때는 '재팬'이 멋의 기준이었죠. 하지만 지금, 2025년 파리의 중심엔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KOREA'. 압델은 백미러 너머로 젊은 손님들이 타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이 변화를 목격할 준비를 합니다.


Z세대의 대화

"저 카페 봤어? 한국식 딸기 빙수 진짜 대박이래!" 뒷좌석에 오른 스무 살 남짓한 프랑스 여성 둘이 신이 나서 떠듭니다. "나 어제 K-뷰티 매장 갔다 왔어. 쿠션 파운데이션 샀는데 완전 좋아." "뉴진스 콘서트 티켓팅 성공했어?" 대화는 끊임없이 한국으로 향합니다. 저는 그저 운전대를 잡고 있을 뿐인데, 귀에는 매일 같은 단어들이 들려옵니다. K-POP, K-드라마, K-뷰티. 어제는 '이태원 클라쓰' 이야기였고, 그제는 '김치찌개 레시피'였죠. 제 택시는 어느새 젊은 세대의 트렌드 보고서가 되어버렸습니다. "기사님, 혹시 한국 드라마 보세요?" 한 손님이 물었을 때, 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 하지만 손녀가 매일 봐요." 그 말에 손님들은 더 신나게 한국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세대 전체의 선택이라는 것을.


거리의 변화

마레 지구를 지날 때면 저는 늘 과거를 떠올립니다. 1990년대, 이 골목엔 일본 애니메이션 굿즈점들이 즐비했죠. '드래곤볼', '세일러문' 포스터가 가득했고, 젊은이들은 그 앞에 줄을 섰습니다. 저도 그때 그 열기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엔 한국 식당들이 들어섰습니다. '코리안 비스트로', '서울 키친', '떡볶이 하우스'. 점심시간이면 프랑스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줄을 섭니다. 비빔밥 한 그릇에 열두 유로. 비싸지만 그들은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맛있고, 건강하고, 인스타용으로도 완벽해!" 한 손님이 말했죠. 창밖으론 한국 화장품 편집숍 간판이, 한국 패션 브랜드 쇼룸이 눈에 들어옵니다. 파리 11구, 13구 곳곳에 '코리아타운'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저는 핸들을 꺾으며 생각합니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돌아가는구나. 그리고 지금, 그 중심엔 한국이 있다."


세대의 교차

휴게 시간, 저는 센강변에 차를 세우고 휴대폰을 꺼냅니다. 손녀 아멜리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습니다. "할아버지, 뉴진스 새 앨범 들어봤어? 완전 미쳤어!" 열아홉 살 손녀는 방 한쪽 벽을 한국 아이돌 포스터로 도배했습니다. BTS, 블랙핑크, 뉴진스, 세븐틴. 제가 그 이름들을 외우기 시작한 건 불과 2년 전입니다. "할아버지 세대는 일본을 좋아했잖아?" 아멜리가 물었을 때,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 우린 일본 문화에 열광했지. 하지만 네 세대는 다르구나." "맞아요. 요즘은 한국이에요, 할아버지." 저는 웃으며 답장을 보냅니다. "나중에 같이 들어볼게." 손녀의 취향을 따라가야 제가 시대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한국은 제 청춘의 아이콘은 아니었지만, 제 손녀의 아이콘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제게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미래는 젊은 세대가 선택하는 것이니까요. 지금 그들이 선택한 건, 바로 한국입니다.


한국 손님과의 10분

오후 네 시, 제 택시에 한국인 여성이 탑니다. 서른 줄로 보이는 정장 차림, 오징어 게임 이벤트 스태프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Bonjour! 샹젤리제 이벤트홀까지 부탁드려요." 유창한 불어와 함께 카드를 꺼내 결제 준비를 합니다. 빠릅니다. 정확합니다. 목적지를 또박또박 말하고, 예상 소요 시간을 묻고, 감사 인사를 잊지 않습니다. 35년간 수많은 손님을 태웠지만, 한국 손님들은 유독 인상적입니다. 시간 약속을 정확히 지키고, 예의 바르며, 모든 게 시스템처럼 움직입니다. "기사님, 파리 정말 아름다운 도시네요." 그녀가 차창 밖을 보며 말합니다. 저는 대답합니다. "당신 나라도 요즘 파리에서 아주 유명합니다. 제 손님 열 명 중 여덟 명이 한국 이야기를 해요." 그녀는 부끄러운 듯 웃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팁까지 건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차에서 내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신뢰가 쌓여, 한 나라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현재형 인기'의 증명

이벤트홀 앞, 저는 잠시 차를 세웁니다. 샹젤리제 중심가가 젊은이들로 가득합니다. 빨간색과 초록색 응원봉을 든 무리, '오징어 게임' 로고가 박힌 티셔츠, 프랑스어와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함성. "대박!", "Oh my god!", "J'adore!" 저는 차창을 열고 그 열기를 느낍니다. 이건 단순한 행사가 아닙니다. 문화의 전이입니다. 1980년대 일본 붐이 그랬듯, 지금 한국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일본은 '쿨하고 신비로운 동양'이었다면, 한국은 '함께 즐기는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접근하기 쉽고, 따라 하기 쉽고, 나눌 수 있는 것들. 떡볶이, K-POP 댄스, 드라마 명대사. 젊은이들은 한국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한국과 함께 호흡합니다. 저는 백미러를 통해 뒤를 돌아봅니다. 에펠탑 너머로 'KOREA' 네온사인이 반짝입니다. "일본은 추억이지만, 한국은 지금이다." 저는 중얼거립니다. 이 순간이, 바로 증명입니다.


노인의 고백

해질 녘, 저는 센강변에 택시를 세웁니다. 35년 전, 제가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일본은 저의 동경이었습니다. 소니 워크맨,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도쿄의 네온사인. 저는 일본을 통해 '발전된 아시아'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제 손녀는 한국을 꿈꿉니다. BTS를 듣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화장품을 쓰고, 한국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지 제 손녀만의 것이 아닙니다. 파리 전체가, 유럽 전체가, 지금 한국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내 청춘의 아이콘에게 감사하고, 내 손녀의 아이콘에게 박수를 보낸다." 저는 조용히 말합니다. 에펠탑 불빛이 강물에 반사됩니다. 그 빛 너머로, 한국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추억이 아니라, 현재로.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지금 파리의 주인공은, 대한민국입니다. 압델 라흐만, 예순다섯. 오늘도 저는 그 역사를 제 택시에 싣고 달립니다.


"KOREA—추억이 아니라, 지금. 파리에서 확인한 대한민국의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