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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김밥, 지구를 돌다 — 도쿄의 셰프, 한국에 무릎 꿇다

by insight19702 2025. 10. 13.

 

도쿄의 오래된 스시 가게

도쿄 시부야 뒷골목, 스무 평 남짓한 스시 가게 '요시다야'. 다케시 요시다, 마흔여덟. 그는 스물여덟부터 이 가게에서 스시를 쥐어왔습니다. 정확한 칼질, 적당한 식초 배합, 밥알 하나하나에 담긴 장인정신. 그의 손에서 탄생한 초밥은 도쿄 미식가들 사이에서 '예술'로 통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기요, 김밥 있나요?" 스무 살 남짓한 여대생이 카운터에 앉으며 물었습니다. 김밥? 다케시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여기는 스시집인데, 왜 한국 음식을 찾는 걸까.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스시만 취급합니다." "아, 그럼 마키즈시 있어요? 루미처럼 한 입에 먹고 싶어서요." 루미? 다케시는 손님이 떠난 뒤 핸드폰을 꺼냈습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주인공 루미가 김밥 한 줄을 통째로 베어무는 장면이 전 세계 SNS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도쿄의 젊은 세대가, 스시가 아닌 김밥을 찾고 있었습니다.


SNS의 변화

김밥
김밥

 

"#gimbapchallenge", "#루미김밥", "#kimbaplove".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열자 다케시의 화면은 김밥 영상으로 가득했습니다. 일본 젊은이들이 편의점 김밥을 사서 루미처럼 한 입에 베어무는 영상. 조회수는 수백만을 넘었고, 댓글엔 "이게 진짜 쿨하다", "스시보다 먹기 편해", "향이 좋아"라는 반응이 줄을 이었습니다. 다케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김밥은 마키즈시를 모방한 음식 아니었나요? 스시가 원조인데, 왜 복제품에 열광하는 걸까.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틱톡에서만 김밥 관련 영상이 일만칠천 개, 총 조회수 이천만 건. 도쿄 시내 편의점에선 김밥이 품절 사태를 빚었고, 한국 식당 앞엔 줄이 늘어섰습니다. 이십 년간 한길만 걸어온 다케시에게 이건 위기였습니다. 손님은 점점 줄었고, 젊은 층은 발길을 돌렸습니다. "시대가 변했어." 제자 료타가 말했습니다. "스시는 격식이지만, 김밥은 자유예요."


거리의 증거

저는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하라주쿠 거리를 걸었습니다. 한국 음식점 '서울키친' 앞, 점심시간에 삼십 명이 넘는 줄. 대부분 십대와 이십대였습니다. 메뉴판엔 김밥이 여섯 종류. 참치, 치즈, 불고기, 야채, 참치마요, 김치. 하나에 육백 엔. 제 가게 스시 세트보다 비쌌지만, 젊은이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저는 한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왜 김밥을 좋아하나요? 마키즈시도 비슷한데." 그 학생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김밥은 따뜻하고 향이 좋아요. 참기름 냄새가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스시는 차갑고 격식 있지만, 김밥은 친구 같아요." 친구 같다. 그 말이 귀에 박혔습니다. 저는 이십 년간 '예술'을 추구했습니다. 완벽한 온도, 정확한 기술, 장인의 손길.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가 원하는 건 예술이 아니라 위로였습니다. 따뜻함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 결심했습니다. 직접 한국에 가보기로.


서울 전통시장, 김밥의 진실

서울전통시장의 김밥
서울전통시장의 김밥

 

인천공항에 도착한 저는 곧바로 광장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원조 김밥집'이라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육십 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김발 위에 밥을 펴고 있었습니다. 손놀림이 빨랐습니다. 하지만 스시처럼 정교하진 않았습니다. 밥알이 삐져나오기도 하고, 재료가 균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이 정도면 우리 마키즈시가 더 정교한데.' 하지만 한 입 베어물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따뜻한 밥, 고소한 참기름 향, 단무지의 아삭함, 시금치의 부드러움. 모든 재료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입안에서 어우러졌습니다. "어때요, 맛있죠?" 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김밥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에요. 가족이 소풍 갈 때, 아이 도시락 쌀 때, 사랑하는 사람 배고플까 걱정돼서 만드는 음식이거든요."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스시는 '보여주는' 음식이지만, 김밥은 '나눠주는' 음식이었습니다. 정(情)이 담긴 음식이었습니다.


도쿄로의 귀환, 새로운 도전

스시 장인
스시 장인

도쿄로 돌아온 저는 머뭇거렸습니다. 이십 년 스시 장인으로 살아온 제가, 김밥을 판다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자 료타가 말했습니다. "셰프님, 음식에 국경이 있나요? 손님이 원하는 걸 만드는 게 요리사 아닌가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다음 날, 가게 메뉴판 맨 아래에 작은 글씨를 추가했습니다. "김밥(한국식 김말이밥) — 700엔". 첫날, 다섯 줄이 나갔습니다. 이틀째, 열다섯 줄. 일주일 뒤, 하루 오십 줄을 팔았습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김밥 사진을 올렸을 때, 댓글이 폭주했습니다. "일본 스시집에서 정통 김밥을 먹을 수 있다니!", "요시다 셰프님 최고!", "한일 음식 콜라보 너무 멋져요!". 일본 방송국이 취재를 왔습니다. 외신도 기사를 냈습니다. "도쿄의 명문 스시집, K-FOOD 김밥 출시로 젊은 층 사로잡아." 저는 카메라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김밥은 제게 겸손을 가르쳐줬습니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라는 걸요." 그날, 가게 밖 줄이 백 미터까지 이어졌습니다.


세계가 말하는 김밥의 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십만 명을 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뉴욕에서, 파리에서, 런던에서. "김밥 레시피를 알려주세요", "한국 음식이 세계를 바꾸고 있어요", "당신 이야기에 감동받았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김밥 하나로 이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이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통계를 찾아봤습니다. 김밥은 이제 전 세계 틱톡에서 천칠백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구글 트렌드에서 '스시'를 제치고 검색 급상승 순위 삼 위에 올랐습니다. CNN은 "한국의 김밥, 스시의 아성을 위협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저는 웃었습니다. 위협이 아니라 진화였습니다. 음식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제 가게 단골손님 하나가 말했습니다. "요시다 상, 당신은 일본 요리사지만 한국 음식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렸어요. 그게 진짜 장인이에요." 그 순간, 저는 울컥했습니다. 제가 평생 추구한 장인정신이, 이제야 완성된 것 같았습니다.


한 줄 김밥이 전한 따뜻함

오늘도 저는 김을 펴고 밥을 올립니다. 참기름을 두르고, 단무지와 시금치와 당근을 올립니다. 옛날 같았으면 "이건 스시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이건 음식을 넘어선 이야기라는 것을. 김밥 한 줄엔 한국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 있고, 가족의 온기가 스며 있고, 세계를 하나로 묶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스시가 기술의 나라 일본이 만든 예술이라면, 김밥은 마음의 나라 한국이 세계에 선물한 위로입니다. 저는 이제 두 나라의 음식을 모두 사랑합니다. 그리고 알게 됐습니다. 음식이 세계를 하나로 묶을 때, 그 중심엔 한국의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다케시 요시다, 마흔여덟. 오늘도 저는 한 줄 한 줄 정성껏 김밥을 말며 생각합니다. "세계가 사랑에 빠진 이 한 줄의 밥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웃게 만들었을까." 김밥은 사랑입니다. KIMBAP IS LOVE.


"한 줄 김밥, 지구를 감동시키다. 기술보다 강한 건, 마음이었습니다."